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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시집살이,아들 못 낳는 서러움) 본문

이민생활/연애.결혼

우리 엄마는...(시집살이,아들 못 낳는 서러움)

별님셋 2023. 1. 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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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곧 힘이었을텐데...

 

"우리 진영이 벌써 핵교 마치고 왔다냐~?"
"네 엄니~"

학교에 보내놓은지 서너시간이 지나 쉬는 종소리가 나면 혼자서 주섬주섬 보자기 가방을 등에 두르고 자연스럽게 학교를 빠져나왔다는 엄마ㅋㅋ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점심때가 두어시간 지난 시점에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할머니집을 들르셔선

"어머이~! 우리 진영이가 또 가방 졸라메고 내빼부렀당께요~!


하시며 2교시만 하고 집에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가고 없어져 버렸다고 했다고...

"하이고~~~!저것이 뭣이 될라고 저러는지 모르것당께~! 참말로!"
하시며 할머니가 속상해 하셨다 한다 ㅋ




아마도 저런 보따리일수도...ㅎㅎ





그래도 그시절 마을에서 꽤나 잘 사는 집이었던지라 할머니는 학교는 꼭 보내서 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셨고 학교 선생님마저도 할아버지랑 거의 친척뻘?이라 엄마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으셔서 엄마가 그렇게 학교만 가면 도망나오는 것에 대해 무지하게 미안해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집은 마을에서 소작한 농부들의 쌀들을 사고 도정을 해서 각지로 보내는 일을 하는 곳이었단다. 그러니 그 어려운 시절에도 엄마는 항상 쌀밥을 드셨고 좋은 옷에 좋은 것만 가지고 사셨다 한다. 거의 젊은 시절까지도 엄마는 부유하셨고 마을에서 여기저기 큰딸 자기 며느리 달라고 해도 아까워서 못 보낸다고 자꾸 미루는 바람에 엄마는 26살까지도 시집 못간 노쳐녀가 됐었다 한다.

그러던 중 엄마는 소개로 만난 아빠의 잘생긴 얼굴에 눈이 가렸고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열악했던 아버지의 집안을 엄청나게 반대하셨던 할아버지를 당당히 꺽고 결혼을 하셨을때도 정말 있는것 없는것 다 해주시면서 깡시골에 들어가서 살려면 필요한 모든것을 다 해주셨다고 한다.

근데 어느날 할아버지께서 노름꾼에 속아서 재산을 담보 삼아 노름을 하시다가 제대로 모든 걸 탕진하시는 바람에 그 충격이 너무 컸고 너무나도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에 급 병을 얻으셔서 자리에 누운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버리게 되셨다.
그리하여 졸지에 할머니는 거리로 나 앉아야 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런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뭐라도 해보겠다 애쓰던 큰아들 마저 자전거를 타고 장을 오가던 중 사고로 목숨을 잃으셨고 할머니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매일같이 큰아들 무덤가에 엎어지듯 쓰러져 대성통곡을 백일 동안이나 하셨다 한다.

남편도 없이 홀로 남겨진 자신...그리고 아직 너무나도 어리기만 한 생떼같은 자식들과 함께 해야할 나날들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그러니 그렇게 큰아들을 찾아가 울었던 할머니의 눈물은 단지 죽음만이 아닌 비통한 자신의 삶을 원망하는 눈물은 아니었을까.....

그러던 어느날 아들 무덤을 또 갔는데 여느때랑 달리 한밤중인 것 처럼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한다. 대낮인데도 무서웠고 동네가 다 훤히 보이는데도 무섭고 마치 겨울인 것처럼 온몸에 한기가 들어 오들오들 떨면서 뭔가에 떠밀리듯이 정신 없이 내려오셨다 한다.

그날 밤 꿈에 큰아들(큰삼촌)이 나타나서
"엄니~! 그만큼 하믄 됐응께 이제 고만 오소.....!
엄니도 동생들하고 힘내고 잘 살아야하지 않겄소~!"
했단다.

그러면서 일부러 겁준거라고... 그리고 담에 또 오면 더 겁 줄거니까 그리 알아라고 그러셨다고...생각해보면 매일 찾아와서 가슴을 쥐어뜯는 엄마를 보는 아들 심정이 정말 미칠 것 같았을 거 같단 생각도들고....다시는 찾아오지 말란 말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싶기도 하고....엄마한테 큰 오빠를 잃고 힘들었던 그때의 스토리를 들을때마다 자식 셋이나 있는 입장으로 너무나도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그렇게 할머니는 틈만 나면 손을 비벼대던 가증스러운 친척들한테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시며 거의 쫓겨나듯이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셨고...엄마에 대한 모든 지원도 거기서 끝나게 되었다. 그 때문이셨을까? 엄마도 할머니도 난 부산 사람인 줄 알고 컸다. 두분 다 전라도 태생인 걸 철저히 숨기셨다. 그 방향만 봐도 너무나도 괴롭다 하셨었다. (그 방향으로 볼일도 보기 싫다고 하셨다는요) 안나가 제임스랑 결혼하면서 호적등본을 뗄 일이 생기면서 알게 됐다는 연기력 대박 쩌는 두분들! 👍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는 엄마를 너무나도 미워하셨었다. 그리도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얼굴만 보고 정말 뭣하나 없는 깡시골에 시집간 엄마가 너무 어리석고 미우셔서 그러셨던 것일까....그래도 큰딸이라고 출산하실때마다 올라오셔서
다 챙겨주신 걸 보면 그 또한 애증이었을까....

 

 

 

 

"시"짜는 "시"짜

친할머니는 엄마가 딸을 낳으실때마다물을 한그릇 떠 놓고선

"삼신 할매요~ 복도 지지리도 없는 년이 아들복도 손주복도 없는데 부디 딸 열 더 점지해 주씨요이~"

헣..... 그말을 듣는 엄마는 딸을 낳을때마다 우셨다고.. 이 말인 즉슨 아들 못 낳아 미워 죽겠으느 더 고생시킬대로 고생시키라는 말...대단하다 얼마나 대단한 아들이라고 ....당신도 여자면서....어찌 그리도 독한 말들을 쏟아냈을까 싶다...

이제 갓 애를 출산해서 몸이 만신창이인 엄마에게 그리 무지하게 대하는 친할머니를 이해를 하다가도 해도 해도 너무 막 대하는 무식함에 결국 외할머니는 참다참다 대 폭발하셨고 근처에 살고 있던 고모들을 모조리 불러서 참교육을 하셨다 한다.

"이 뭣도 없는 시골 촌구석에 우리 귀한 딸램이를 데려다 놨으면 업고 살지는 못할 망정 이 무슨 무식한 짓거리요~!"

그러면서 엄마 데리고 당장에 짐 싸서 내려 갈테니 그리 알라고 으름장을 놓으면 그제서야

"사돈~ 내가 뭐 그리하자고 그런 말 했겄소~! 뭐이 됐든지 자손 못 봐 서운해 그런거지 다른 건 없소~!"

하며 싹싹 비셨다고... 저기요~~! 할매요~~ 자손 있는데....딸램은 자손 아님..?? 그 뭣도 아님요..?😤딸만 줄줄이 낳는 엄마는 아들을 낳을때까지 수많은 날들을 갖은 구박속에 사셨으나...결국 할머니의 임종을 오롯이 지킨 사람도 엄마였다는 정말 아니러니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당신의 억울한 인생을 피할 수 없었던 건 당신이 오롯이 선택한 당신 삶 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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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센터에 갔더니 눈에 띄는 다이어리가 있었다. 유심히 보니 "나의 엄마" 에 대해 적는 거라고 ...생각해 보니 살면서 우리 엄마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적이 전~~~ 혀 없는 거다....그래서 오늘 한번 적어본다. 내가 모르는 역사 속 누군가의 딸이었고 엄마였던 당신..그리고 아직 누군가의 아내인 그녀의 얘기들...항상 엄마는 내 얘기를 책으로 쓰면 몇권은 나오겠다
하실 정도로 당신의 인생이 평탄치 않았음을 회고하셨다.

'엄마요~ 내 엄마 이야기 풀어드리리다...'

 

 



억울하다 할수 있겠소...?
기구하다고 할 수 있겠소...?
그리 선택한 당신 삶이라 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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